눈을 감으면 네가 보여
오늘도 어김없이 그는 찾아왔다. 노오란 날개 팔랑거리며 날아와 누워있는 나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손이 내 손가락의 한 마디보다도 작아 그 손길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렇게 토닥임을 받고 있으면 마음이 점점 따뜻해졌다. 그는 귀에 무어라 속닥속닥거리다가 사라졌다. 그러면 나는 꿈에서 깼다. 어김없이 다람쥐 쳇바퀴 굴리는 듯한 나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누군가의 배웅도 없이 일을 나갔다가 상사에게 익숙한 꾸지람을 듣고, 누군가의 마중도 없이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잠을 잤다.
오늘도 그는 찾아왔다. 오늘은 나의 손가락을 꼭 잡고 눈을 감았다가 무어라 말을 하고 사라졌다. 오늘은 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데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금요일 밤이었다. 토요일에는 가족이 있는 본가로 내려가는 날이었다. 그 때면 신기하게도 꿈에 그가 찾아오지 않았다.
"요새 꿈에 요정이 찾아와."
"요정?"
토요일 아침 일찍 본가로 가면 오후가 다 되어 도착하였다. 그러면 아빠께서 고기를 구우시고, 엄마께서 과일을 깎아주셨다. 나는 그 옆에서 차를 끓였다. 오늘의 차는 국화차였다. 국화 꽃잎 톡톡 올려 부모님께 내밀었다.
"응, 평일 내내 찾아오다가 집에 오면 안 나타나."
"그러고 보니 회사는 좀 적응이 되니?"
"아... 응."
국화 꽃잎을 바라보는 시야가 흐렸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가슴이 답답하였다. 내일모레면 나는 또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 속으로 들어갈 것이었다. 엄마께서 수박 한 조각을 쑥 건네주셨다.
"먹고 풀어."
"응?... 응."
무슨 소린지 몰랐지만 부모님의 얼굴을 보니 자신의 표정이 읽힌 거 같았다. 수박을 삼키는 입안이 괜히 좀 썼다.
모두가 힘든 시대라고 한다. 힘들다는 말은 어쩌면 회사에 가까스로 들어간 내가 하기에는 배부른 소리인지도 모른다.
"먼저 들어가볼게."
방으로 들어갔다. 내일모레면 나는 또.......
오늘은 토요일인데도 신기하게 꿈에 요정이 나타났다. 그는 내 머리를 그 작은 손으로 쓸어내려주었다. 그러면서 말을 하는데 오늘도 역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손이 어떠한 손인지 오늘은 어렴풋 느껴졌다. 이는 나를 위로하는 손이었다.
"애한테 지금 힘내라고 하면 그것도 부담이겠지?"
"그렇다고 그만두라고도 할 수 없잖아."
"걱정이야. 잘 이겨냈음 좋겠는데."
나를 걱정하는 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