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주무세요, 선생님.
그 말 전하고 돌아서는 매번이 제 유언이고 사인이었습니다. 불가피하게 마주한 뒷켠의 숨 없음이 그리도 서늘합디다. 수많은 일꾼 데려다 복도 닦게 하면서, 그렇게 한 번이라도 복도의 길이를 가늠해본 적은 있으십니까. 급하게 적습니다, 선생님. 멀미가 나고 삶이 아득할 때야 글이 써지는 것이 과연 선생님 말씀대로입니다. 깊이를 아셨는지는 몰라도.
달칵 소리가 줄곧 달콤한 종소리입니다. 저 편은 어떤지 아십니까? 온통 어둠에 꽃향기 피어나는 게 어찌나 사람을 구렁텅이로 밀어넣는지는 아십니까. 발걸음 뗄 때마다 존재치 않을 조문객의 옷깃이 정말 보기라도 한 것처럼 스칩니다. 심장만이 저를 묶어두고 이 두 눈깔은 너머만 좇지요. 아름다움에 눈이 뜨이면 마음이 따라가는 것은 응당한 일입니다. 삶의 경계선에 갖가지 설탕물 발라두고선, 무릎 꿇어 오열할 때마저 입이 쓰게 만드는 것이 선생님의 신입니까?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십니다. 저의 문학은 미지의 철학이지요. 그리하여 선생님은 여전히 선생님으로 남아계실 수 있습니다. 답이 없는 것이 문학의 매력이라 황홀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실은 저를 질근질근 죽이고 있던 거라 감히 고백하면은, 비유적으로 박수치고 기뻐하실 걸 압니다. 스승 항상 잔인하셨습니다. 옛 현인의 단어에서 길을 잃는 일이 잦아진 지 실은 꽤 오래되었으나 이것 또한 진지하게 논의되어질 것은 아니지요.
낡은 린넨이 스치는 소리가 귀에 수 번을 맴돕니다. 무미건조는 자꾸만 두손 두 발을 들고 내 오래된 병을 잠을 위한 땔감으로 쓰는 일에 정신이 지칩니다. 선생님, 눈 크게 뜨고 똑바로 제 방 보십시오. 생명 위협할 것이 이리 많습니다. 발 편히 쭉 뻗는 게 두렵고 나약합니다. 불온은 한 겹 벗어진 찬 발을 끌어당길 기회만을 봅니다. 덜컥 젖어드는 눈가에 울화가 치민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복도 저 멀리의 선생님.
그러나 이 모든 걸 그저 아늑한 침대에 재우는 건 또 못할 짓이더군요. 아기처럼 자는 이는 아기처럼 우는데, 아기처럼 자니까 결코 깨나지 못하는 비극은 단순히 겁에 질린 옹알이입니까. 걷잡을 수 없는 태어남은 거꾸로 불행과 더러운 꿈 방울을 잉태하고 그 벽에 갇혀 방황하는 장황한 이야기가 매일 밤입니다. 책상 앞에 앉아 불 밝히고 정신 다잡아도 언뜻 놓치면 떨어지는 게 끝도 없습니다. 흰 거리를 오가기도 하고 지나치는 검은 얼굴들이 응시하는 눈빛은 저를 뚫고 순간순간이 계단 오르는 이가 뒤로 나자빠지는 중의 중력입니다.
선생님. 끝 없이 늘어놓다보니 또 고비에 도달했습니다. 몇 초 빠져든 형상이 날카롭습니다. 이에 먹히면 또 어떻게 저는 좀먹는지요. 글이 턱턱 막힙니다. 제게 숨을 불어넣은 글은 또 어찌 되나요. 단어 하나씩 나아갈 때마다 절망입니다. 이럴 때에만 언어는 솔직하군요. 실은 선생 몰래 헤쳐나가는 데에 대단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제 실력 변변치 않아 이런 데에나 대단하다는 단어의 획 긋는 게 이젠 웃음도 나오지 않습니다. 헤쳐나가는 것이지요. 한 치 앞이 예리한 칼이라니요. 꿈도 미지의 글을 닮은 모양입니다. 이것을 알아가려면 기어이 저는 꿈에 끌려가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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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달디 단 것처럼 걸쭉하니 덩어리 져서는 목구멍을 막아서고 어느 쪽 오고 갈 생각 없어 눈이 핑 돌고 뜻하지 않게 오늘 저녁의 메뉴와 조우하게 되는 일상의 순간을 아십니까 차가운 나무 나룻바닥 짚어선 쥐어짜진 눈물 서둘러 뚝뚝 흘리며 정제되지 않는 숨 속에서 강박적으로 음식의 맛을 뇌까리는 저의 등짝은 혹여 아실는지요 오늘은 브로콜리 감자 버섯 감자 마늘조금감자 감 자 감자 눈물너머일렁이는고작몇시간전을쥐어짜고싶은건아시는지요. 눈이 좀처럼 감기지 않습니다. 병원이 좋겠습니다. 저를 묶어두고 자잘한 손뼈를 꺾는 병원이 좋겠습니다 선생님 부디 펜대는 꺾지 마옵시고
기록합니다.
3분 쉬었다가 기록합니다. 잠시만 시간을.
꿈답게 연관성 없이 행복한 우연이었으나 다만 잔혹했습니다. 손목이 여즉 화끈거립니다. 수천 번은 썰리고 갈리고 목이 쉬었는데 혹 선생님은 듣지 못하셨는지요. 듣지 못했는데 종이 위의 잉크자국은 잘도 처보시는지요. 선생이 문법에 맞게 가르친 비속어입니다. 떨며 사전 필사하는 몸이 어질어질 그날 밤이면 백이면 백 죽었던 것을 두고 욕지기를 쓰지요. 밤새 몸부림친 침대 위의 침구 흐트러짐이 햇살에 비추어보면 우스울지 몰라도 살인 현장이란 말입니다. 흩뿌려진 피가 문득 보면 잉크라서 그 날은 또 만년펜 한 손에 들고 덜덜덜 덜 땀에 자꾸 손에서 미끄러집니다. 삶의 희망에서 또 미끄러지더랩니다.
선생님, 어찌되었간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날 밝고 또 뵙겠습니다. 또 부질없는 배움을. 안녕히 주무십시오. 자겠습니다. 이만.
비고록(悲顧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