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죽는다.
여기 세기와 세계를 통틀어 가장 완벽한 세상이 하나 있다. 모든 행위들에 도덕성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예술이라는 명목 아래에 무참히 사람을 살해하고 화형을 하거나, 질식사를 시켜도 그 누구도 경악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단지 탐미주의에 의한 살인마저도 육체에 대한 원초적, 혹은 고양되고 숭고한 의식과 욕구라고 생각하며 외려 박수를 치곤했다.
또한 흑백도 존재하지 않는다. 선과 악은 없고, 옳고 그름 역시 없다. 사람들은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비판하지도 않는다. 역으로 생각하자면 모두 비난받을 이유도, 비판받을 이유도 없다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무기력했다. 탁상공론이든 논쟁을 펼칠 이유라던가, 도덕의 모호함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쩌면 이율배반의 연속인 이 곳을 이상이라고 불렀다.
이상理想. 사람들은 병들어 죽어가는 것조차 섭리로 인정했다. 그래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구차해지거나 악랄해지지 않았다. 이따금 “신은 죽었다!”라고 주장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논쟁을 펼치며 붉어진 얼굴로 침까지 튀어 이야기했다.
- 니체가 신을 왜 죽였는지 아십니까? 인간의 본질은 신을 찾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으로 도시화가 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도 메커니즘에 빠지게 된단 말입니다. 신을 찾지 않게 되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기계와 다를 게 없는 염세주의자가 된 것이고요. 빌어먹을, 결국 우리가 기계와 다를 게 뭡니까?
사람들은 그의 말에 웅성거렸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사유를 하기 시작하면 에덴은 파괴되고야 만다. 뱀이 미혹한 것처럼 모두 욕망하게 되어 시기, 질투를 비롯해 이상은 깨어지고 말 것이다. 이런 논리는 죽어야 마땅했다. 나는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말했다. 저 자를 끌어 내리세요! 저건 선동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일제히 응시했고, 한 명이 동의함과 동시에 궐기하듯 내 의견에 동의했다.
사람들은 그를 끌어 내렸다.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가했으며, 그는 죽기 전에 달뜬 숨으로 말했다. 이래봤자 인간의 피학성과 가학성은 본능일 뿐이야. 꿈에서 깨길 바라. 이 말을 마지막으로 숨이 끊겼고, 나는 채 분이 풀리지 않아 숨이 끊긴 그의 목을 조르고 또 졸랐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게 곧 이상이고 내 전부인데. 여기는 안전해, 사사로운 감정조차 독이 되지 않아. 빌어먹을! 꾹 깨문 입술이 터져 아릿한 고통이 일었다.
그의 선동행위로 인해 사상에 반反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궐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모든 욕망을 짓누르고 있는 거라고 했다. 단지 내가 가진 상처나 현실에 가졌던 아이러니 때문에. 그래서 모든 것을 거세하고자 하는 거라고 내 눈을 올곧게 바라보며 말했다.
기시감이 들지만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나는 모두를 혼란시키는 그들을 처참히 죽였다. 여기는 ‘예술’이라는 명목 하에 모든 행위가 납득되는 곳이지 않은가. 나는 이 세상을 구축한 예술가이자 곧 신神이었기에 모든 기시감을 용서하고 묵인했다. 끝까지 억울한 표정으로 내 손끝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이었다. 틀린 건 새롭게 고쳐 쓸 수가 없어. 비릿한 피가 입 안에 알싸하게 감돈다.
아무도 내 행위를 제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죽어갔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사람들은 사실 내가 망각하고자 했던 행위의 타당성을 구태여 묵인한 게 아닐까. 하고. 그저 명백한 범죄를 고양된 예술이라고 자위하던 날들이 손끝에서부터 되살아난다. 아, 손바닥이 뜨겁고 혈관을 타고 올라오는 열기는 목덜미까지 후덥지근하게 데우고야 만다.
이 모든 건 내 허상이자 몽상이었다. 나는 현실에서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 이상 속에서야 모두를 죽이고 짓밟아 과시하고자 했나보다. 결국 모든 것을 벗고 보디 나는 아주 볼품없었고, 정신으로 앓은 것들 때문에 초췌하고 피폐하기 그지없었다.
하여, 나는 모두를 잃은 꿈속에서 투신을 계획해본다. 나는 오늘도 죽는다, 오늘 죽었으니 오늘이 된 내일도, 모레를 지나 글피까지 나는 내 이상 속에서 죽고자 할 것이다. 비로소 내가 죽어야 깨어질 아이러니, 혹은 퇴폐적이고 이기적인 사상이기 때문에.
나는 끝끝내 꿈에서 며칠은 죽어야 깨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죽는다.
오늘도 나는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