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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언제나 창틀에 매달려 있을 때부터 시작한다.

 앞뒤가 잘리고 툭툭 끊어지는 그 꿈 속에서 나는 언제나 창틀에 매달려 저리는 손가락에 어떻게든 힘을 주려 애쓴다. 사실 내게는 붙잡을 것 하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손톱에서 피가 날 정도로 버틴다.

 블랙홀이라도 열린 듯 시커먼 창문 안쪽에서는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내 손가락을 떼어내 나를 저 아래로 추락시키지 않는 대신 내 팔을 붙잡고 끌어올려 주지도 않는다. 뭐해요, 왜 나를 도와주지 않아요. 나 여기서 떨어지면 죽는다는 걸 모르겠나요. 나는 건물 벽에 발을 붙여 버티며 손을 창문 안쪽으로 뻗어 몸을 끌어올린다. 그 얼굴, 어둠이 지워버린 그 얼굴의 윤곽이라도 확인하겠다는 마음으로 얼굴을 고개를 든다.

 그 얼굴이 누구의 얼굴이었는지 잠에서 깨어나면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기억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저 얼굴 한가운데가 엉망이 된 수채화처럼 번진 채 기억의 귀퉁이에 남아 있을 뿐이다. 다만 한 가지, 동자도 없이 새까맣기만 했던 눈이 기억한다. 까맣게 타 버린 숯과 같은 그런 눈이. 생기라고는 조금도 새어나오지 않는 번들거리는 그 눈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눈과 마주친 나는, 그가 나를 끌어올리기는 고사하고 아래로 밀어 버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그 칠흑 같은 눈이 나를 더 채찍질하기 전에, 나는 창틀에서 손을 떼고 몸에서 힘을 뺀다. 내 몸은 한치의 자비도 없이 아래로, 아래로 추락한다. 인생의 끝에서 스쳐지나가는 주마등, 슬로우 모션 등의 특수효과 따위는 없었다. 내 몸은 땅이 끌어당기는 대로 떨어져 바닥에 부딪힌다.

 그 순간 몸은 내 통제를 벗어나고,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뜨끈한 액체가 흘러내려 땅바닥에 웅덩이를 그린다. 그와 함께 빠르게 꺼져 가는 마지막 생명 한 줄기를 붙잡으며 나는 고개를 돌려 위를 확인한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내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다.

 

*

 

 

 “그거 네 잘못 아니야.”

 그가 내 손을 잡고 말한다. 그의 손바닥은 따뜻하게 내 손등을 감싸는데, 그 온기가 그의 것인지, 아니면 방금 전까지 쥐고 있던 커피 잔의 열기인지 알 수 없다.

 “네가 살아나와서 안도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사고, 너 때문에 일어난 것도 아니잖아. 그냥 불행한 일이었을 뿐이고, 네가 살아 돌아온 건 불행 중 다행이었을 뿐이야.”

 “응……. 그럴지도 모르지.”

 그는 그 앞에 놓인 커피처럼 부드럽고 따뜻했으며 한번 길들여진 후에는 그 없이는 살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러니 그의 옆에 매일같이 악몽의 괴로움이나 하소연하는 애인 따위는 필요 없다고, 나와 그 모두가 느끼고 있다. 입속의 붉은 혀로는 희망의 언어를 속삭이지만 눈 속에는 어쩔 수 없는 피로와 환멸의 빛이 잠시 꿈틀거렸다가 이내 숨어버린다. 그 앞에서 더는 내 마음속 심연을 보여줄 수 없다.

 “당신 말이 맞아. 앞으로 열심히 심리치료도 받고, 취미생활도 해 보고 그래야지.”

그는 다행이라며 눈매를 휘어 웃는다. 그 안도의 기운이 진심이라는 것이 뼛속까지 시리게 느껴져서, 파르르 몸을 떤다. 그는 그것이 단지 에어컨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점원을 불러 온도를 높여 줄 것을 부탁한다.

 

*

 

 나는 창틀에 매달려 있었어요. 그건 건물에 붙은 창문이 아니라 버스 창문이었답니다.

 어쩐지 버스 아저씨치고는 너무 젊다 했죠. 취직한 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었는지. 운전하다 고라니와 맞닥뜨린 경험도 처음이었나 보죠? 그렇지 않고서야 고라니 한 마리 살리겠다고 사람 서른 명의 목숨을 절벽 아래로 던져버리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버스는 갈수록 좁아지는 낭떠러지 사이에 끼어 멈췄지만 비극까지 멈춘 것은 아니었습니다. 창문이 깨지며 밖으로 떨어진 사람이 반이요 여기저기 부딪치는 충격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죽은 사람이 또 반입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창틀의 유리는 깨져서 아직 붙어 있는 유리가 내 살갗이 무참히 찢어내고 있었습니다. 내 손에서는 아픔보다 두려움이 더 클 정도로 많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물론 내 얼굴 옆으로 뚝뚝 떨어지는 그 선혈이 오롯이 나의 것만 있으리라고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말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걸까요. 그렇다면 내 짧은 인생 역시 여기서 끝입니다. 이 상황에서 구조대를 부를 수도 없을뿐더러 어차피 오래 버티지 못할 테니까요. 그런 거라면 더 고통받을 것 없이 빨리 이 손을 놓고 아래로 떨어져 버리는 것이 낫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손은 더 단단히 창틀을 붙잡았습니다. 내 살갗을 파고드는 유리는 도무지 무디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저기요…… 여기 지금 버스가 전복됐는데요……. 네, 여기 미령산……. 잘 모르겠어요……. 빨리…….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군가 살아 있어요. 가슴속에서 성냥이 켜지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살아서 나갈 수도 있다는, 그런 꿈 같은 환상 그리는 그런 성냥팔이 소녀의 그것 같은 성냥이. 나는 마지막으로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 저 좀 끌어 올려주세요!

 

*

 

 “뉴스는 보았습니다.”

 젊은 여의사는 그이만큼이나 부드럽고 친절하다.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피로와 환멸을 찾으려 눈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녀는 그저 웃고, 나는 그녀가 나를 귀찮아하는지 알 수 없는데, 그것이 더욱 두려움을 배가시킨다.

 “악몽을 꾸신다고 하셨는데, 그 꿈은 어떤 내용인가요?”

나는 대답 대신 천천히 눈꺼풀을 내린다. 눈꺼풀 안쪽 어둠은 완전히 어둡지 않고 정체 모를 덩어리들과 소용돌이들이 일렁거린다. 그 고요하고 차분한 혼돈 속 숯덩이 같은 눈동자가 가만히 떠오른다.

 “대답하기 어려우시다면 억지로 하지 않으셔도 좋아요.”

 “말하지 않은 게 있어요.”

 나는 입을 연다.

 

*

 

 어김없이 나는 창틀에 매달려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건물에 붙은 창문이 아니라 버스 창문이다. 창틀에 붙어 있는 깨진 유리가 무자비하게 피부를 헤집는데 도무지 놓을 수가 없다. 이번에는 딛고 올라갈 벽도 없다.

 어김없이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그 얼굴을 올려다보았고, 이번에는 똑똑히 기억한다.

 서른 명 중 그나마 정신줄을 잡고 있던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킬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구조 요청을 했다. 비록 몸이 성치는 않았지만 정신과 감각만큼은 멀쩡해서, 나는 내게 전달된 구조 요청을 똑똑히 알아들었다. 머리를 부딪혀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심하지는 않았고, 나는 원한다면 바닥을 기어 그녀에게 손을 뻗을 수 있었다.

다만 장소가 문제였다. 전복된 버스는 낭떠러지 사이에 간신히 끼어 있었고, 균형 역시 간신히 맞추고 있었다. 차체가 그녀가 매달린 쪽으로 기울어 있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불안하게 들려오는 끼익하는 소리는 지옥에 떨어진 죄수들의 신음 같았다.

살려 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저 좀 끌어올려주세요!

 나는 갈 수 없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귀를 막아도 그 목소리는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왔고, 나중에는 거의 비명으로 변하다 결국 저 아래로 사라져 갔다.

 버스에서 나는 소리가 멎었다.

 그녀는 지금 그 숯덩이 같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그 눈에서 불길이 인다. 성냥불 같은 불꽃이 눈 속에서 활활 타올라 홍채를 붉게 물들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 눈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내가 선택해야 함을 안다.

 나는 손을 놓았고, 내 몸은 저 아래로, 아래로 떨어진다. 생의 마지막에 스쳐지나간다는 주마등이나, 공중에 흩어지는 눈물을 클로즈업해주는 슬로우 모션도 없다. 그저 아래로, 나의 지옥으로 떨어진다.

반복된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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